한국의 우려스러운 의대 과몰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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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최근 한국 의대 집중 현상이 사회적 화제가 되면서, 한국 산업계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언론에서 종종 보도되고 있다. 한국의 이런 현상과는 달리 중국의 이공계 열풍 현상도 보도되고 있다. 사실 한국도 과거 한때는 이공계가 인기가 있었다. 그래서 과거를 회상하면서 몇 자 적어 본다.

의대 공화국이 된 이유 중 하나는 일부 학계에서 벌어진 마피아식 악행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1980년대 말, 소위 K고·S대 마피아의 학계 내 영향력은 실로 대단했다.

나는 1988년 서울 홍릉 근처에 있던 K원에서 기계공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다(K원은 1991년에 대전으로 이전). 박사과정 진학이 확정된 상태였지만, K고·S대 출신의 젊은 KS 마피아 두 명(E씨와 L씨)으로 인해 나뿐 아니라 지도교수와 후배들까지 소위 ‘삼족이 멸하는’ 수준의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결국 실험실은 완전히 폐쇄되고 말았다. 그들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가장 역사가 깊고 고가의 장비를 잘 구비한 실험실을 차지하려는 의도였다고 본다.

이들이 이런 행위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지도교수님께서 황해도 금천 출신 실향민이셨고, K고 출신이 아니었으며, 전공도 기계공학·핵공학·물리학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다 보니 자기 파벌을 형성하지 못했던 점이 있었다고 본다. 실험실이 폐쇄된 후, L씨는 N센터라는 것을 설립하고 장비를 공동 관리했다.

기계공학에서 실험 장비는 연구 성과를 좌우할 만큼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장비 없이 성과를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사실 기계공학은 나의 적성에 잘 맞는 분야였지만 KS 마피아에게 입은 충격으로 학업을 포기하게 되었다. 그리고 곧 좋지 않은 소문에 시달렸다. 뻔한 얘기겠지만, 이런 경우 내가 실력이 부족해서 진학 못했다느니 박사 학위에 환장을 했다느니 하는 음해성 소문이 돌았다. 나는 자존심도 상해서 기계공학이 아니어도 내가 할 일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의대 진학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집안 사정상 6년간 의대를 다니기는 어려웠다. 결국 나는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미국 유학을 알아보았고, 연구 장비가 필요 없는 수학으로 전공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미국 대학원에서는 전액 장학금(full scholarship)을 보장받아 응용수학의 한 분야인 통계학 박사를 취득했고, 미국 대학 수리과학과에서 15년간 교편을 잡았다. 이후 모친의 건강 문제로 귀국해, 현재는 국내 한 지방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러나 나처럼 중도에 전공을 바꾼 사람은 한국 학계에서 버티기 쉽지 않다. 지금은 KS 마피아의 영향력이 많이 줄었지만, 대신 S대 특정 학과 파벌의 영향력은 여전히 크다. 예를 들어, 나의 연구 성과가 학과 내에서 가장 우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파벌에 속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BK21 같은 연구 과제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교묘한 방해를 받았다. 한국 학계의 이런 ‘인간차별’은 교묘하고 치밀하며 잔인하기까지하다. 다행히 나의 전공이 응용수학·통계학 분야라 장비 없이도 연구가 가능했기에 지금까지 그럭저럭 버틸 수 있다.

최근 의대 집중 현상이 사회적 화제가 되고 있다. 해결책으로 재정적 지원 등이 거론되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런 당근 정책은 일시적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지속적인 효과를 얻기는 힘들 것이다. 이보다는 본인의 적성에 맞는 전공과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시급한 것은 학계의 자정 노력이라고 본다. 인맥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평가받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이공계 기피 현상도 상당 부분 완화될 것이다.

과거 이공계에 우수 인재가 몰렸을 때, 이공계 졸업자의 급여가 의사보다 높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비록 오래전이기는 하지만 장극(Paul Chang) 교수님 같은 분은 경성의대(서울대 의대 전신)를 다니다 공학으로 전공을 바꾸셨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는 물리학과와 공대 인기 학과는 의대보다 입학 점수가 더 높았다. 이렇게 인재들이 이공계로 향했던 이유는 금전적 혜택이 아니라, 비교적 공정한 평가와 학문적 열정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오늘날과 같은 지나친 의대 편중 현상을 막고 국가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한국 학계의 고질적인 파벌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의학계에도 파벌은 존재하겠지만, 의사는 ‘1인 자영업’이 가능하다는 점이 큰 차이다. 반면 공대 출신은 개인 연구자로 독립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특정 파벌에 밉보이면 ‘이 바닥에서는 끝’이 나고 소위 '조직의 맛'을 보게 된다. 그러니 조직에 얽매일 수밖에 없고 파벌을 형성해서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그러나 의사는 독립적으로 개업할 수 있기에, 파벌에 밉보여도 생존에 큰 위협을 받지 않는다.

나는 전공을 바꿨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대학에서 교수로 임용되는 데는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나 같은 사람을 ‘전과자’ 취급하거나,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며 비하하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미국에서 '인종차별' 같은 것도 경험했다. 하지만, 한국 학계 파벌에 의한 ‘인간차별’은 그보다 훨씬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런 잘못된 관행과 학계 파벌이 사라져야 이공계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본다. 전과자 얘기가 나왔으니 유명한 전과자를 소개해 본다. 과거 한국 학계에서 소위 인간국보로 불리던 무애(无涯) 양주동 선생은 와세다대 불문학과에 입학하여 졸업은 영문학과에서 했으며, 그후 평양 숭실대 영문과 교수를 역임한 뒤 월남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국문학자가 되었다. 1980년대 이전에는 이렇게 전공을 바꾸어도 학계에서 아무런 불이익이 없었다. 수필가로 유명한 금아(琴兒) 피천득 선생도 영문학자이지만 한국의 대표적 수필가로 활약했고, 아나운서 차인태도 성악을 전공했다. 가수 최희준은 서울 법대 출신이고, 테너 엄정행은 배구선수였다가 성악을 했으며, 미국무부 한국어 통역사 이연향은 성악을 전공했지만 현재 미국무부 통역국장을 맡고 있으며, 가수 주현미는 약대 출신이고, 국악인 황병기도 서울 법대 출신이다. 과거에는 자기 적성을 찾아 전과를 해서 큰 업적을 이룬 경우가 이렇게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런데 요즘 학계에서는 소위 파벌이 창궐하면서 본인 재능을 발휘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공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금전적 혜택도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당근 정책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위에서 언급했듯 보다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

최근 의대 집중 현상을 우려하는 보도가 있고 이에 대한 국가적 대책 등이 언론을 통해 나오고 있어 나의 의견을 몇 자 적어 보았다. 참고로, 당시 나를 쫓아낸 K원 기계공학과의 E씨와 L씨는 현재 생존해 있으며, 실명을 공개할 경우 형법 제307조에 따른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 있음을 양해 바란다.




     목 차





형법 제307조 (명예훼손):
제1항.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2항.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형법 제310조 (위법성 조각 사유):
형법에서는 공연히 즉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가능성이 있게 사실 또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명예를 훼손한 경우에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공공의 이익에 관한 사항에 관하여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는 위법성이 조각되어 무죄가 된다.



진암 (眞巖/참바우/亞ㅅ士) 박찬석 (朴燦奭) 書.
나는 절대 자살하지 않는다. 절대 자살 당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