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정신 치료는 ‘복수’다” — 하버드청담심리센터 (최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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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정신 치료는 ‘복수’다. 이 말이야말로 진리다. 도덕적인 수사보다 훨씬 더 직관적이고 현실적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Eye for an eye, tooth for a tooth)’ — 이 말은 함무라비 법전(Code of Hammurabi) 제196조와 제200조에 나오는 문장으로, 고대 법률의 대표적인 응보 원칙이다.

범죄에 상응하는 벌을 내리는 이러한 응보형 법률(retributive justice)은 오랫동안 비판을 받아왔다. 그 이유는 응보형 처벌이 정의(justice)와 보복(revenge)의 경계를 흐릴 수 있고, 감정적 보복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피해를 되갚는다’는 개념 자체가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진지하게 묻고 싶다. 그렇다면 피해를 가한 가해자는 과연 ‘인도적’으로 범죄를 저질렀는가? 그는 이미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인 방식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입혔다. 그에 대한 응징 역시 엄정하고 단호해야 하지 않는가?

또 어떤 이들은 응보형 처벌이 “용서와 회복의 가능성을 배제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처벌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가해자가 스스로 반성하고 회복에 나설까? 응보는 단지 ‘과거에 머무는 행위’라고 비판하는 시각도 있지만, 이는 오히려 가해자의 입장을 옹호하는 해석이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마땅한 처벌을 받을 때 비로소 아픔을 치유하고, 과거를 뒤로한 채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한 정의의 회복이 없다면 피해자는 억울함과 분노 속에 우울증을 겪고, 더 나아가 영혼의 불구자로 살아갈 수도 있다.

사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가혹한 형벌이 아니다. 오히려 매우 온건하고 균형 잡힌, 죄에 상응하는 정당한 처벌이다. 앞에서 고대 법률의 대표적인 응보 원칙이라고 했지만, 내 개인적 의견으로는 자비의 법률에 가깝다. 예를 들어 내가 치아 1개를 잃었다고 하자. 그래서 가해자의 치아 1개를 상실하게 했다면, 나는 1개를 잃고 1개를 갚았으니 손해가 없는 것인가? 설령 가해자의 치아 10개를 부러뜨린다 해도 나의 피해는 변하지 않는다. ‘이에는 이’라는 말은 결국 내가 1개의 피해를 입었다면, 가해자에게도 1개만 잃게 하고 그 이상은 참으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 정도면 오히려 자비의 법률 아닌가.

물론 논란의 소지가 있는 응보형 법률도 존재한다. 아래는 건축업자에 대한 처벌을 규정한 법 조항이다. 함무라비 법전 제229조와 제230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제229조: 건축업자가 집을 제대로 짓지 않아 무너졌고, 그로 인해 집 주인이 사망했을 경우, 그 건축업자는 사형에 처한다. (If a builder build a house for someone, and does not construct it properly, and the house which he built falls in and kills its owner, then that builder shall be put to death.)
제230조: 만약 무너진 집이 주인의 아들을 죽게 했다면, 건축업자의 아들도 죽여야 한다. (If it kills the son of the owner, the son of that builder shall be put to death.)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제230조는 과잉 응보이자 부당한 ‘대리 처벌’로 보일 수 있다.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닌 가족을 처벌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사회는 ‘건축을 맡은 자’가 목숨을 걸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관념을 바탕으로, 극단적인 책임 윤리를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다.

사람이 느끼는 가장 큰 고통 중 하나는 자식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참척(慘慽)의 고통이다. 집 주인은 건축업자의 과실로 인해 이 참척의 고통을 겪었고, 그 고통은 단순한 슬픔을 넘어 삶 전체가 무너지는 절망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 고통을 건축업자도 똑같이 느끼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죄 없는 건축업자의 자식을 희생시켜야만 그 응징이 완성되는가? 그 부분은 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러한 방식의 응보는 현대적 기준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수준의 응보형 처벌은, 오히려 죄에 상응하는 균형 잡힌 정당한 형벌이라고 본다.

물론 성경에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있고, 노자 또한 “남이 악행을 하면 선으로 갚으라”고 가르쳤다. 아름답고 고귀한 말이지만, 현실적이진 않다.
실제로 공자가 노자의 이 말을 듣고 제자를 보내 물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선행으로 입은 은혜는 무엇으로 갚는가?” 이에 노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최명기 원장의 말처럼, 때로는 복수가 최고의 정신 치료다. 억울함을 바로잡고, 고통에 응답하며, 정의를 실현하는 그 행위는 단순한 보복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자기 방어다.

여담이지만, 요즘 신세대들이 쓰는 신조어 중에 금융치료, 물리치료, 거울치료라는 단어가 있는데, 복수라는 말이 너무 공격적으로 들릴 수 있으니, 거울치료라고 하면 좀더 순화된 단어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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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 제307조 (명예훼손):
제1항.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2항.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형법 제310조 (위법성 조각 사유):
형법에서는 공연히 즉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가능성이 있게 사실 또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명예를 훼손한 경우에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공공의 이익에 관한 사항에 관하여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는 위법성이 조각되어 무죄가 된다.



진암 (眞巖/참바우/亞ㅅ士) 박찬석 (朴燦奭) 書.
나는 절대 자살하지 않는다. 절대 자살 당하지 않을 것이다.